내가 헤어짐을 맞이하는 방법 [힙합의 인문학]

모든 래퍼들의 가사는 본인이 직접 쓴 가사라는 사실! 알고 계셨나요?

그렇기 때문에 래퍼들은, 자신의 삶, 생각 그리고 가치관을 자신의 곡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게 됩니다. 저는 이게, 힙합 음악을 정말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. 저 역시도 믹스테이프*를 만들 때, 모든 가사들을 직접 썼고 그 과정에서 제 생각과 삶을 나타내고 싶어했어요. 그래서 모든 제 곡들은, 부분적으로 저를 대변한다고 생각해요.

* 믹스테이프: 기존의 유명 래퍼의 비트에 가사를 새로 얹은 리믹스 노래 혹은 그것들을 모아 만든 앨범.

그중 제가 2023년 11월에 제 유투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“안녕(Good bye)“이란 곡을 이번에 소개해 볼까 해요. 이 곡은 헤어짐에 대한 저의 태도를 아주 잘 담아낸 곡입니다.

벌스 📄 1 ~ 4마디

참 많은 공통점, 하나의 목표점을
나누며 우리는 여기까지 걸어왔어
시간이 지나도 곁에 있을 것만 같어
늘 함께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서

사실 이 곡은 무려 8년 전인 2017년에 처음 쓰게 되었어요. 그때는 제가 군 입대를 앞둔 직전이었습니다. 약 2년간 사회와의 단절을 앞두고 있었고, 그 당시 정말 즐겁게 랩 크루 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작별을 해야 했어요. 이러한 상황에서 위와 같이 곡의 첫 4마디를 써 내려가게 되었습니다.

지금 내 옆에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, 우리는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것 같아요. 함께라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거죠. 어느새, 우리가 전혀 모르는 남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, 다시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. 그래서인지 헤어짐이란 매번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.

벌스 📄 5 ~ 8마디

근데 영원한 건 없네 우린 어느새
인생의 2막을 준비해 1막이 저무네
커튼이 열리면 이젠 각자의 무대 위로
왜냐하면 우린 모두 인생의 주인공

저는 두 번째 4마디에서, 헤어짐이란 상황을 연극으로 비유해 봤어요. 저는 이 비유가 저의 크고 작은 헤어짐들에 대부분 대입된다고 생각해요. 대표적으로 저의 소울메이트이면서 중, 고등학교부터 인연을 함께 해온 건이와의 이별이 있습니다. 건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.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지금은 미국에 정착해 일을 하고 있죠. 중간중간 한국에 들어와 소중한 추억들을 같이 쌓을 수 있었지만, 가장 친한 친구와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늘 컸습니다.

왜 우리는 함께하지 못하고 멀어져야 하는 걸까?

이 질문에 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에 주인공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게 됐어요. 우리는 타인의 삶 속 드라마의 멋진 조연이기도 하지만, 동시에 자신의 삶 속 주연이기도 하니까요. 내가 걸어가는 길이, 함께하는 사람의 길과 달라질 경우,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하기도 하는 거죠. 그렇게 인생이란 극의 1막이 내리고 새로운 2막이 오를 때,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무대 위로 올라왔다고 생각했습니다. 1막에서 함께 했던 추억은, 아쉽지만 뒤로한 채요.

벌스 📄 9 ~ 14마디

각자만의 Rail 또 각자만의 Aim
그 주변을 환히 빛내줄 각자만의 Fam
우리가 다시 만날 땐, 더 빛나길 바랄게
축복해 난 언제나 당신의 Fan

우린 비록 다른 길을 걷지만 맘에 담은
그대 모습은 늘 내 기억 속에

지금의 저는, 제 삶을 함께해 준 분들의 영향이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. 함께한 추억, 그리고 순간들이 힘이 되고 거름이 되어 저를 나아가게 한다고 믿습니다. 행복한 추억들뿐 아니라, 너무나 슬프고 아픈 기억들 마저도요. 그래서 진심으로, 또 진심으로 감사해요. 이제는 다른 길 위에 놓인 우리가, 다신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‘당신’을 위해 제가 늘,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도하는 이유입니다.

벌스 📄 15 ~ 16 마디

보게 되겠지 다시 이 인연이 닿는다면
어른이 됐지 그때까지 기약 말고 안녕

어릴 땐, 헤어짐 앞에서 우리 꼭 다시 보자고 천진난만하게 말을 하곤 했어요. 희망적으로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게, 으레 해야 하는 일 같이 느꼈던 것 같아요. 이 곡의 후렴에서 나오듯, ‘오래 못 봐도 금방 또 볼 듯이 곧 봐 ‘라고, 혹은 ‘다신 못 봐도 꼭 만날 거야 또 봐 ‘라고 말하는 것처럼요. 그래서 사실, 17년도에 처음 썼던 마지막 4마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.

우린 비록 다른 길을 걷지만 난 이게
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 길을 걷다
걷다 가보면은 말야 다시 같이 걸을 거야
3막에서는 말야

근데 시간이 지나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니, 희망과는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. 어느 순간부터는 빈말로라도 ‘다시 보자’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 하겠더라고요. 적어도 남발하지 않았습니다. 만약 하게 된다면, 가능한 그 말을 꼭 지키려고 했어요. 말의 무게가 더 이상 가볍지 않게 느껴지더라고요. 그렇게 2020년, 학부 졸업이라는 또 다른 이별을 앞둔 저는 이 가사의 마지막을 고쳐 쓰게 됐습니다.

내 삶의 헤어짐을 관통하다.

저는 지금도 이별의 순간들을 생각하거나 새롭게 마주할 때면, 이 곡이 늘 떠오르곤 해요. 가사를 다시 곱씹으면서

함께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,
헤어짐을 받아들이고,
상대방의 앞날을 위해 기도하고,
끝에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 애쓰는,

변하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.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고 저 역시도 그랬지만, 헤어짐을 대하는 저의 자세만큼은 꽤 오래 여전합니다. 그래서 저는 이 가사가, 저의 수많은 헤어짐들을 관통해 왔다고 느껴요.

시간이 지나 미래의 저는, 20년도의 저처럼 가사를 고쳐 쓰게 될까요? 아니면 여전히 같은 생각으로 이 곡을 듣고 있을까요? 적어도 이 곡이 ‘한 때의 제 이별들, 그리고 그 속의 저를 대표하는 곡’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습니다.

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, 글을 읽고 ‘안녕(Good bye)’이라는 노래에 관심이 생기셨다면, 아래 유투브 링크를 통해 감상해 주세요 ☺️ 감사합니다!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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